만리장성 중국의 상징과 역사적 의미
중국을 상징하는 거대한 성곽 만리장성의 역사적 의미
만리장성(萬里長城, Great Wall of China)은 중국의 대표적인 유적이자 세계에서 가장 긴 성곽으로, 주로 북방 유목민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건설된 방어벽입니다.
진시황제가 전국 시대의 여러 성곽을 연결하고 보수하면서 본격적인 만리장성의 형태가 갖춰졌으며, 이후 명나라 시대까지 지속적으로 개축되었습니다.
현재 남아 있는 만리장성은 허베이성 산해관에서 간쑤성 가욕관까지 이어지며, 총 길이는 약 2,700km에 달하지만 기복과 중첩된 부분을 포함하면 5,000~6,000km에 이릅니다.
1987년, 만리장성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으며, 중국을 대표하는 문화유산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만리장성 구조와 축조 방식
진한 시대: 진시황 시기에는 토성형태로 성벽을 쌓았습니다. 흙과 볏짚을 섞어층층이 쌓는 방식으로, 볏짚은 흙을 단단하게 고정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명나라 시대: 명나라 때는 벽돌과 돌을 사용해 성벽을 더 견고하게 쌓았으며, 지금 우리가 보는 대부분의 장성은 이 시기에 완성된 것입니다. 성벽의 높이는 약 78m, 너비는 상단 4m, 하단 67m에 이릅니다.
성벽뿐만 아니라 적을 감시하고 신호를 전달하는 봉화대와 보루, 성문과 요새도 함께 구축되었습니다.
시대별 축조 과정
만리장성은 다양한 왕조를 거치며 축조와 보수가 반복되었습니다.
전국 시대: 조, 연, 위 등 북방과 국경을 접한 국가들이 유목민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성곽을 쌓았습니다.
진나라: 기원전 221년, 진시황제는 연과 조의 장성을 연결하고 서쪽으로 확장했습니다. 몽염 장군이 지휘해 동쪽 요동에서 서쪽 임조까지 장성을 완성했으며, 이는 오늘날의 만리장성보다 북쪽에 위치했습니다.
한나라: 한 무제는 영토 확장과 함께 서쪽의 옥문관까지 장성을 연장했습니다.
남북조 시대: 북위는 기존 장성보다 남쪽에 새로운 자성을 쌓았고, 수나라와 금나라 역시 방어를 위해 장성을 보수하거나 신축했습니다.
명나라: 원나라를 몰아낸 명은 재침입을 막기 위해 장성을 대대적으로 개축했습니다. 영락제 시기부터 시작된 장성 보수는 가정제 때 더욱 강화되었으며, 16세기 말 지금의 형태가 완성되었습니다.
만리장성 현황과 보존 노력
현재 남아 있는 만리장성은 명나라 시기에 축조된 구간으로, 중국 정부는 이를 역사적 문화재로 보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역 주민이 벽돌을 가져가거나 자연적인 침식으로 인해 상당 부분이 파괴되었습니다.
2006년 중국장성화학회의 조사에 따르면, 원형이 잘 보존된 구간은 전체의 20%에 불과하고, 30%는 형태만 유지하고 있으며, 50% 이상은 붕괴되거나 흔적만 남아 있는 상태입니다.
관광지로 가장 유명한 구간은 베이징 근교의 팔달령장성입니다. 베이징에서 약 80km떨어져 접근성이 좋고, 용이 산을 따라 꿈틀거리는 형상을 띠어 많은 관광객이 찾는 장소입니다.
만리장성 문화적 의미와 논란
만리장성은 중국 역사와 문화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지만, 그 역사적 경계와 의미를 둘러싼 논란도 존재합니다. 2009년 중국은 진장성과 명장성을 포함한 전체 만리장성의 길이를 약 8,851km로 발표했는데, 한국 학계에서는 이 과정에서 고구려의 박작성(지금의 호산산성)을 만리장성의 동쪽 끝으로 주장하는 것에 반발했습니다.
중국은 이후 역대 왕조의 모든 장성 유적을 조사해 발표했으며, 한국 언론에서는 이를 만리장성의 길이를 연장하려는 시도로 해석해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관광과 역사적 가치
오늘날 만리장성은 세계 각국에서 관광객이 찾는 명소입니다. 특히 팔달령, 모티위엔, 지엔커우, 스마타이등은 인기 관광지로 유명하며, 걷기와 등산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도전과 성취의 의미를 선사합니다.
만리장성은 단순한 성곽을 넘어, 수천 년에 걸쳐 축조된 인류의 노력과 방어의 상징입니다. 또한, 다양한 역사적 사건과 문화의 교차점에서 그 중요성이 부각되는 유적지로, 세계인에게 깊은 인상을 주는 장소입니다.
만리장성은 과거의 방어벽을 넘어, 지금은 세계적인 문화유산으로서 역사와 문화를 되새기고, 인간의 의지와 노력을 상징하는 기념비적인 건축물로 남아 있습니다.